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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13
제1002호 2024년 5월 5일~5월 14일
문화창조의 요람, 충남
에 있었다. 서울에서 과거시험이 있을
득이 만든 것이다.
어졌다. 양반과 기생의 사랑이야기로
시 신광수에게 벼슬을 내렸다. 신광수
내포칼럼
라치면 전국의 광대들이 당시 충청감
결성에 최선달과 목천의 하한담이
기생 춘향이 이어사의 정실부인이 되
는 영릉(효종대왕릉)의 참봉이 되어
영이 있었던 공주에 모여 소리과거를
최초의 판소리 명창이라는 점은 기록
어 정렬부인에 올랐다는 스토리를 최
여주에서 3년을 지내며, 당시 처음으
치르는 전통이 있었고, 일류 광대를
에 남아 있다. 하지만 이들이 부른 판
초로 만들었다. 또한 유진한은 충청지
로 ‘시조’를 불렀던 이세춘에게 시조
선발하여 궁중에 보내는 일도 충청도
소리 사설을 지은 사람은 별도로 있었
역 문사들 전체를 모아 시 경연대회를
사설을 지어 주었다.
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다. 그가 바로 목천의 유진한(1712-
성대하게 열었고 그 시회를 통해 충청
신광수는 이보다 앞서 과거시험에서
최혜진
현재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
1791)이다. 유진한은 목천지역의 양반
지역 문화를 크게 진작시켰다.
2등했던 시가 평양 교방에서 노래로
목원대 교수
로 등재되어 있는 판소리는 바로 충청
가문에서 태어났고 문장이 뛰어나서
유진한의 절친으로 서천의 신광수
불리워져 이미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도 양반들로부터 시작된 국민장르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지만 정치
(1712-1775) 역시 내로라 하는 문장가
지금도 남아있는 서도창 가
충청지역 메가시티론은 충남, 충북,
판소리는 애초 각 지역의 이야기를 재
그것이다. 는 평양 기생이
대전, 세종을 묶어 하나의 경제권, 생
담과 노래를 섞어 하던 장르였으나,
소리 시험을 볼 때 필수 작품이었을
활권, 문화권으로 도약하겠다는 정책
18세기 결성 지역의 최선달(최예운,
정도로 중요했고, 당시 노래를 잘 불
제안이다. 중원에 있지만 서울 경기나
1726-1805)과 목천 지역의 하한담(생
렀던 모란이 나중에 궁중에 잔치 참여
전라도 경상도에 비해 무언가 늘 소극
몰 미상)에 의해 예술적인 장르로 급
를 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충청도는 예로부터 문화가 들어오거나 나가는 허브 역할을 한 곳
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차에
부상했다. 최선달은 결성 석당산, 누
의 작가이며, 시조 사설의 작가이기도
유네스코 문화유산 판소리는 충청도 양반들부터 시작된 국민장르
무척 선도적인 발상이라고 느껴진다.
에산, 형산 등지에서 소리를 연마하며
했던 신광수는 당대 일류 작사가 대접
충청도는 대한민국 중간에 있으면서
득음을 하고, 한양으로부터 온 관리의
을 받았던 것이다. 친구 채제공(1720-
조선시대 최선달, 하한담, 유진한, 신광수 등 걸출한 소리꾼 배출
경기도와 강원도, 전라도와 경상도를
눈에 띄어 어전에서 소리했으며, ‘가
1799)이 평양감사로 부임했을 때 지어
모두 접변으로 가지고 있는 특별한 지
선대부’의 벼슬을 받았다. 소리를 해
준 는 또다른 친구 강세황
역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다양한 지역
서 벼슬을 받은 최초의 사례다.
(1713-1791)이 친필로 기록을 남겨줄
의 문화가 흘러들어오기도 하고 흘러
최선달이 소리를 배우기 위해 전국
정도로 명작이었다.
나가는 통로이자 허브 구실을 했던 지
에서 몰려오는 제자들을 가르치느라
특히 충남지역에서 발전한 문화의
역이다. 그 중에서도 충남은 예로부터
손에 물 마를 날이 없던 하인이 도사
적 탄압으로 실각한 남인 가문이었다.
집안을 이루었다. 그와 세 동생들, 아
바람은 18세기만 보더라도 어마어마한
문화창조의 요람 구실을 하였다.
에게 제발 손님좀 그만 오게 해달라고
하지만 유진한은 최초의 를
들 사형제가 서천의 팔문장가로 꼽힐
영향력을 끼쳤다. 최선달, 하한담, 유
충청도는 조선시대만 해도 팔도 문
하소연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로 보
지은 작가로 지금 판소리사의 첫머리
만큼 문장력이 뛰어났다. 하지만 신광
진한, 신광수 등 예술인과 문화인들이
화의 중심이었던 것같다. 그것은 임금
아, 최선달이 당대에 이미 소리로 유
에 올라 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
수 역시 과거에 합격만 하고 벼슬을
함께 만들어 낸 당시 예술문화는 충청
이 있는 서울과 가까우면서도 포구나
명했고, 드디어 판소리의 정체성이 생
니랴. 유진한은 호남지방을 여행하며
받지 못한 채 젊은 시절을 보냈다. 그
을 넘어 전국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
평야 등 물산이 풍부하고, 언제든 서
겼음을 알 수 있다. 전주신청에서 최
들었던 춘향 이야기를 소재로 하여 당
가 과거 합격 후 열었던 잔치에서 광
다. 이들이 만든 판소리는 지금 세계
울로 급히 갈 수 있는 지리적 여건이
선달과 하한담이 불렀던 는
시 유행하던 이야기노래인 ‘타령’의
대 원창이 소리를 했다. 하지만 소리
의 문화유산이 되어 대한민국의 자랑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지금으
금세 인기를 얻었고, 또다른 비가비
사설을 지었다. 그것이
값을 줄 수 없었던 신광수는 원창의
이 되었다. 문화창조의 요람이었던 충
로치면 전국예술인총연합회 회장쯤
(양반) 광대 권삼득이 그 뒤를 이어
백구>인데, 이 는 한자로 기
부채에 시 한 수를 써주었다. 원창이
남이 중고제를 더욱 활성화하고 다시
되는 역할은 충청도 예술인들이 맡았
판소리를 발전시켰다. 유명한
록이 되어 있어 아쉽지만, 최선달 하
10년 후 어전에서 소리를 하게 되었을
문화의 중심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
고, 전국의 예술문화를 리드하는 입장
> 중 ‘제비몰러 나간다’ 대목은 권삼
한담을 통해 판소리 로 불리
때 임금이 신광수의 시를 보시고, 즉
란다.
잎 색깔 세 번 바뀌는 카멜레온 같은 매력
식물이야기
삼색참죽나무
김미희 어쩌다 마주친 폰카 시
꽃보다 잎이 아름다운 계절이다. 봄
을 지나며 나무가 만들어 내는 잎은
각각 고유한 색을 지니고 있다. 잎
이 아름다운 식물 중에서 요즘 으뜸
인 나무를 꼽자면 바로 삼색참죽나
무이다. 수목원을 찾는 많은 분들이
“무슨 나무에요?”, “살아 있는 것
맞아요?”라고 물어볼만큼 매력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 이름에서 느낄
수 있듯 ‘삼색’ + ‘참죽나무’의 의
천리포수목원의 삼색참죽나무. 천리포수목원의 입구정원과 큰연못 주변에서 만날
미를 가지고 있는데 봄부터 여름까
수 있다.
지 잎의 색이 붉은색, 노란색, 초록
색순으로 세 번 바뀌어 그러한 이름
™ 천리포수목원의 삼색참죽나무
이 붙여졌다. 붉게 올라온 새잎의
1977년 7월 30일 뉴질랜드 던컨 & 데이비스(Duncan & Davis) 농장에서 묘목으로 수
목원에도입되었다.
모양도 깃털을 연상케하는 이색적
우리 소원은 왜 끝이 없을까요?
인 모양이다. 잎이 나오고 나서 보
숨을 쉬는 한 소원도 죽지 않겠지요.
™ 삼색참죽나무의 생육환경
면 마치 꽃이 피어 있는 것 같은 착
조마조마 두근두근 간절하게 애절한 듯 욕심인 듯
각이 들 정도다.
직립형으로 자라며, 서리에 강하고 양지를 좋아한다.
숨어있던 소원들이 드러나는 날입니다.
품종명으로 부르는 ‘플라밍고
색색 옷으로 치장하고 부처님을 뵙니다.
(Flamingo)'는 이 붉은 잎이 홍학이
보세요. 이래도 소원 안 들어주실 건가요?
라고 불리는 플라밍고의 깃털 색을
화가 사라지고, 바로 초록색 잎을
나 붉은 빛의 잎을 내기 시작했는
애교를 보냅니다.
닮아 지어졌다. 화려하고 선명한 붉
만들어 생육한다. 이는 바닷가에 위
데, 아마도 천리포 지역에 적응하는
은 빛의 잎사귀는 햇살이 따뜻해지
치한 해양성 기후의 영향으로 봄철
데 나름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
면 점점 옅어지면서 노란빛으로 변
서늘한 기후가 오랫동안 지속되기
다.
연등
신한다. 하지만 변신은 여기서 끝나
때문이라고 추측만 할뿐이며, 수목
봄부터 여름에 걸쳐 삼색참죽나무
지 않고 날이 더워지면서 초록빛의
원의 정원사들은 “삼색참죽나무의
의 변신을 지켜보는 것은 수목원 가
잎으로 변한다. 그래서 피부색을 바
변화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자연의
드너로서 크나큰 재미이며 매일 수
내 소원 들어주세요
꾸는 ‘카멜레온(Chameleon)'이라는
마법”이라고 말하곤 한다.
목원에서 일하는 사람이 느낄 수 있
부처님이 잘 보이게
품종명으로 불러지기도 했다.
1977년에 수목원에 도입된 삼색참
는 특권인 것 같다. 조금 더 많은
불을 밝힙니다
삼색참죽나무의 아름다운 변신은
죽나무는 사실 도입된 후 수년간 새
사람들이 제각기의 특징을 가지고
유독 천리포수목원에서 그 진가를
순이 붉게 나오지 않고 처음부터 녹
자라나는 식물의 신비로움을 경험
발휘하는데, 똑같은 나무를 내륙이
색으로 나와 당시 직원들의 의구심
하기를 희망한다.
부처님이 보시기에 퍽
김미희
나 도시로 가져가 키워도 삼색의 변
을 낳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
/천리포수목원 강희혁 연구원
마음에 드는 소원이길 바랍니다
시인·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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